좋은 삶/미탄통신2008. 2. 29. 21:26

40대 중반의 여류작가가 문학상 심사를 하는데, 응모작 중에서 ‘40대 초의 중후한 남자’라는 표현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여류작가는 속으로 ‘너는 꽝이다!’ 하며 혀를 낼름 내밀지는 않았을까. 그 정도로 요즘 40대 초에 처한 사람과 ‘중후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거꾸로 요즘 40대 초의 사람들 중에는 한창 때 청춘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응모작을 쓴 사람은 자기 나이를 기준으로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 그 심사위원은 시대의 변화에 무감각한 표현에 딱지를 놓았을 것이다.

나도 마흔 된 사람이 자신을 중년이라고 칭하면 다시 쳐다봐진다. 시대 자체가 젊어진 요즘 뭐 그렇게 고루한 생각을 하나 싶어서이다. 이미 환갑잔치가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환갑을 축하하던 풍습은 평균수명 60세 시대의 관습이므로 환갑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평균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지금 칠순을 맞이하는 분들도 예전 환갑 맞은 분들보다 젊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생물학적인 나이에 0.7을 곱해야 체감나이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나이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글에서는 50세 넘은 사람들을 노년이라고 칭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이든 사람들을 노년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흑인을 블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불공평한 일이다.  노인 혹은 노년이라는 말에는 무력함, 추함, 쇠퇴의 이미지가 중첩되어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명이 연장되면서, 더욱 젊어지고 길어진 장년기를 중년이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무기력이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것처럼, 중년이라는 단어에는 무개성하고 몰염치한 아저씨 아줌마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이들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중년’이라는 용어보다는 차라리 베이비붐 세대라는 표현을 쓰고싶다. 대략 1955년에서 1963년에 이르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대중적인 대학교육을 받아 자의식이 무척 강하다. 그들은 또한 7,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몸으로 겪으며,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 결집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이 탄탄한 경제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베이비붐세대는 전세계적으로 막강한 숫적 강세에 힘입어 세상을 바꾸며 살아왔다.

-베이비붐 세대는 음식을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스낵과 레스토랑, 수퍼마켓 산업을 변혁시켰다.

-베이비붐 세대는 옷을 입기만 한 게 아니라 패션 산업을 변화시켰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동차를 사기만 한 게 아니라 자동차 산업을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랑데부만 한 게 아니라 성의 역할 이미지와 성행위를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일만 한 게 아니라 일자리를 혁명적으로 뒤집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결혼만 한 게 아니라 인간관계와 그 제도의 본질을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돈을 빌리기만 한 게 아니라 금융시장을 바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컴퓨터를 이용하기만 한 게 아니라 기술을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혁신적으로 삶의 조건을 주도하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나이드는 방법도 새롭게 할 것이다. 젊음만을 추구하고 칭송하는 문화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렇게 혁명적인 시기에 우연히 나도 나이들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하여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삶의 조건에 순응할 생각이라고는 없으며, 생산적인 활동을 못하게 되는 그 날이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청년정신의 소유자가 어디 나뿐이랴. 아직 젊은 육신에 체험에서 얻은 자신감까지 더해졌는데, 구태의연한 연령역할개념에 떠밀려 사라질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유심히 책을 읽다보니, 중년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서 탐구한 사람이 없지않다. 심리학자 융은, 중년에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문화적 각본에 따라 살아가느라 기운이 소진된 중년에는, 자신의 숨겨진 정체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한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본성 중에서 아직 발현되지 않은 소질들, 융이 ‘그림자’라고 부른 그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살아간다면, 또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화학자 조셉 켐벨 역시 중년에 극진한 의미를 부여했다. 중년이야말로 사회화, 문명화 속에 방치해둔 정신의 원시적 힘을 되살릴 때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생에 타고난 소명, 운명에 내재된 비밀, 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하고, 이성과 합리에 따라 재단해온 감성과 직관을 되찾는 것을 조셉 켐벨은 ‘너의 천복을 따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 처음 접했을 때, 내 마음에 조용한 희열이 일었다. 내 안에 조그만 씨앗으로 존재하던 기질이 세월에 걸러지면서 단단한 나무로 자라난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절 살아낸 경험에 의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저물기 시작한 시간 앞에서 한번은 나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합하여 나는 행복한 글쟁이요, 순간을 향유하는 쾌락주의자인, 조르바 더 붓다로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것을 감히 나의 천복을 찾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수리의 수명은 보통 7,80년이라고 한다. 그 중 40년쯤 되는 시기에 독수리는 높은 산에 올라 스스로 바위에 부딪쳐서 부리와 발톱을 부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 다음 새롭게 40년을 다시 산다는 것이다. 구부정하게 줄기가 굽어져 젊어서부터 할미 소리를 듣는 할미꽃은 정작 수명을 다 할 때 쯤이면, 줄기를 꼿꼿하게 바로 세운다고 한다. 씨앗을 잘 휘날리기 위한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그래서 할미꽃을 일러 백두옹이라고 한다. 비록 머리는 하얗게 세었어도, 나이들수록 꼿꼿해지는 백두옹! 우리도 독수리와 할미꽃처럼, 중년에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삶을 살자. 고루한 연령차별주의에 굴복하는 것보다 그 편이 얼마나 의연한가.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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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적절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글이네요.
    미타님의 글은 어렵지만 참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8.02.29 23: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우면 안되는데요? ^^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폭이 좁아질테니까요.

      2008.03.01 07:35 신고 [ ADDR : EDIT/ DEL ]
  2. 아! 정말 힘있고 멋진 글이에요. ^^;;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글을 잘 살리셨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라면 출판으로 잘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

    2008.03.01 01: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이야.
      혜진씨가 출판계 인사라면 바랄 나위가 없겠군.
      말은 이렇게 해도, 성격상 조바심을 내지는 않고 있는데,
      그런 태도에도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 ㅎㅎ

      2008.03.01 07:38 신고 [ ADDR : EDIT/ DEL ]
  3. 아... 그럼 앞으로 5년 정도는 그냥 이대로 살까요? ㅋㅋㅋ
    정신차리자...^^

    2008.03.01 19: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여자들에게 서른이 중요한 변곡점이듯, 남자들에게는 마흔이 삶을 재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 같던데요?

      마흔을 맞이하는 심경이 음속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는 표현을 본 적도 있으니까요.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어도, 그 절박함은 알 것 같았어요. 승범씨는 5년이나 일찍 고민을 시작했으니, 마흔에는 여유만만한 입지를 다질 수 있으리라 봐요.

      2008.03.02 09:10 [ ADDR : EDIT/ DEL ]
  4. 전적으로 동감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이드는 것에 관심이 많은 중생으로서 미탄님의 글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예전에 한창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와 지키마터의 '나이드는 것의 미덕'을 읽고
    나이드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알고 나니 정말 기쁘더라구요.
    그래서 친구에게 그 기쁜 마음을 흥분한 채로 이야기했더니,
    시니컬한 표정으로 '넌 이제야 죽는 것이 두려워진 모양이로구나.'
    켁, 그러더라구요.
    물론 그 친구와는 오해가 겹겹히 쌓여갈 무렵의 이야기이지만 말입니다.

    미탄님이 그 문을 잘 열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미탄님과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까요. ^^

    아, 그리고 '신화의 힘'을 읽고 계시네요.^^ 다 읽으셨나요?
    마침 읽고 있는 중인 저로서는 무척 반가우면서 독서에 힘이 실리는데요~

    2008.03.03 14: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미탄

      아, 모험가님. 아직 젊은 분이신것 같은데, 의외로 관심대가 비슷하시네요?
      저는 aging에 순응하는 시각의 책에는 별로 이끌리지 않는 편이에요.
      말씀하신 두 권의 책을 못 읽겠더라구요. ^^
      기존의 연령개념을 뒤집어 보는 책에 훨씬 많이 땡겨하지요. 서점 가셨을 때 혹시 생각나시면 훑어보시기를.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고령사회 2018" "서드에이지""쥬시토마토" 추천합니다.

      2008.03.03 20:12 [ ADDR : EDIT/ DEL ]
  5. 네...받아 적습니다. ^^

    저는 저 책들을 30살이 되면서 읽었네요.
    이제야 생각해보지만 어쩌면 저 친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는 죽는 것과 나이 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두려워져서 저의 화두로 떠올랐고
    그래서 저 책들을 끌어 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저 책들은 오히려 '젊은'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30대가 되니 정말 새로 태어난 것 같고요, 40대가 기다려져요.
    그렇게 연륜과 지혜를 쌓아가서(그럴 수 있다면 말입니다.^^) 50대와 60대를 거쳐
    70까지 도달하는 것도 기대가 되고요. ^^

    과연 '스코트니어링'처럼 몸의 기능이 다했을 때
    의지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구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서점에 발길을 자제하고 있는 저에게 서점에 갈 핑계를 만들어 주시니 말입니다. ^^

    2008.03.04 19: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나이듦과 죽음, 두려운 것 맞지요.
      이 세상에 더 이상 내가 없다니... 생각하기조차 두려워서 그냥 잊어버리고 사는 수 밖에요.
      그 거대한 운명 앞에는 그저 순응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직은 이런저런 하고싶은 일이 많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어지고,
      그저 세상의 이치에 내 몸을 가만히 맡기는 순간이
      올 꺼라고 생각해요.

      2008.03.04 19:39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