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미탄통신2008. 2. 19. 01:33
 

짧은 시간에 한 분야의 구조를 꿰뚫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체험을 통해 지혜 한 토막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직접경험으로 길어올린 지혜는 힘이 세다. 알짜배기 내 것이다. 내가 인생의 전반부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완전하게 누릴 수 있는 시공간은 ‘지금 여기’ 뿐이라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라.

마음가는대로 살다보니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으리라. 황당하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상식이 별건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라 안전하고 주변에 수용될 확률이 높다는거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라고 해서 내 목적지가 아닌 곳을 따라갈수는 없었다.

나는 상식에 다소 어긋난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선수이다. ^^ 직관적이고 자기최면이 강한 성격이라, 판단이 빠르고 깊이 빨려들어간다. 15년 전, 신문에서 글쓰기 과외가 성행중이라는 기사 한 편을 보고 글쓰기교실을 오픈해서 4년간 운영한 적이 있다. 올해초 김태우의 ‘미코노미’를 보고, 웹 2.0이 우리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환경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블로깅은 내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지향성은 오래된 것이다. 글, 그림, 사진, 도예, 건축... 그 어느 것이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진 것에 몰두하곤 했다. 좋은 시 덕분에 행복하고, 막사발을 보면 쓰다듬고 싶고, 피곤할 때면 이미지가 보고싶어지는 식이다. 건물구경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다보니 아름다움을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또 관찰과 감정이입에 능하다. 어떤 사람이든 글이든 몇 번 보고나면,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그의 기질과 관심과 욕망을 추출해낼 수 있다. 처음에는 남들 눈에도 다 보이는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의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백하게 드러나있는 단서도 읽지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기질로 해서, 인물평을 쓰면 어울릴 것 같다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내일을 위해 무언가 축적하기보다 오늘을 향유하며 살다보니, 창고는 텅 비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행복하다. 늘 무엇엔가 몰입하고 나를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니엘 핑크가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미래에는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의 6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한 것을 보고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 6가지 요소를 얼추 이해할 만하다는 회심의 미소이다.

내가 이렇게 나를 이해하고 있듯이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만난 것은 우연이요 맘에 들지않을 때도 많지만, 오래 데리고 살다보니 익숙해지지 않았는가. 이제 어지간히 ‘나’에 맞출만하다. 두드러지는 기질은 살려주고, 부끄러운 구석은 도닥여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을만하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고, 행복도 없다. ‘유일한 나’를 사랑하고 표현하라. 나의 희망과 절망, 부끄러움과 자부심, 욕망과 좌절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온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자아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육아프로젝트가 인생의 정점인 것을 돌이켜보라. 우리가 창조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글과 그림은 나의 분신이다. 우리에게 최고의 희열을 준다.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기쁨이지만, 누군가 나의 의도를 이해해준다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혼자 보고 즐기려고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소통을 전제로 한다. 표현은 완벽한 독자를 가정한 자기충족적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서로의 속내를 나누고 공감하는 기쁨이 인생 최고의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주된 관심사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존재이다. 일상적인 친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적인 세계를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아라. 삶의 질이 높아지고 새로운 삶의 양식이 될 것이다.

수명연장시대에는 ‘나로서’ 살아갈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원하기만 한다면 또 한 번의 생을 살아도 좋을만한 시간이 확보되었다. 인생의 전반부를 사회에서 주어진 문화적인 지침에 따라 살았다면, 인생의 후반부에는 가장 나다운 것을 찾아 스스로 문화가 되는 일도 의미있을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키워드는 ‘창조’와 ‘커뮤니티’이다.

첫째, 나를 표현하는 도구를 찾아라, 그로써 의미있는 생산물을 창조하라.

둘째, 에너지네트워크에 접속하라, 행복은 공명共鳴이다.

이것은 나의 문화를 창조하여 내식대로 나이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저렴하게 인생을 즐기는 법이기도 하다. 굳이 ‘저렴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소유보다는 향유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돈이 별로 없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며, 돈을 많이 벌어 훗날에  즐기는 것도 좋지만, 오늘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추상이다. 우리에게 인생은 오늘이라는 모습으로 온다. 우리의 시간은 지금 뿐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라.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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