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미탄통신2007. 10. 14. 13:03
5월의 끝, 신록에서 초록으로 가는 중. 사람으로 치면 막 사춘기를 벗어나, 풋내와 성숙한 내음이 뒤섞인 묘령의 나이.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개울물이 힘차게 소리지르며 내려갑니다. 회색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납니다. 산할아버지가 구름모자 쓰고 있는 지리산 줄기, 이모작을 하느라 누렇게 익은 보리와 밀이 초록색 배경 속에서, 이국적인 색채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좋은 계절의 아침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숨을 들이마십니다. 이 풍경 속의 어떤 것을 내 글 속에 등장시켜줄까 부지런히 눈을 움직입니다. 우유빛 마아가렛, 붉디붉은 작약, 노란 붓꽃, 보라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주달개비의 향연. 낯선 이에게 꼬리를 흔드는 순한 강아지 몇 마리, 이따금 꿩 울음소리가 정적을 깹니다.


여기는 하동군 악양면 꽃뫼 자락의 황토집,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이 공저를 쓰기 위해 저술여행을 왔습니다. 2박3일간 오로지 책쓰는 이야기만 하자는, 구본형소장님의 부드러운 엄명이 있었지요.


처음 해 보는 공저 실험이므로,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쓸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론을 거듭하며 좋은 책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레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의견일치를 보게 되었지요. 한 사람씩 자기 사례에서 도출해낸 강점발견 방법에 대해 발표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기획은 형태를 갖추어가며 충실해졌습니다. 점차 자신감이 차오르며, 우리 모두 흡족하고 행복해졌습니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잘 놀 수 있다니, 늦도록 계속된 토론 사이사이 차분한 낙수 소리가 꿈결 같았습니다.


저술여행 일정이 끝나고, 일부 연구원은 또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2기 연구원 한 분이 남도에서 2기 단합대회를 주최하는, 넉넉한 마음씀을 보여주었거든요. 신안군에서 10분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증도', 여기에서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섬 전체의 해안을 빙 돌아가며 건물을 지어, 객실마다 전망을 확보한 기가 막힌 배치, 빼어난 감각을 자랑하는 고급 리조트에서 우리는 저마다 소중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두고온 딸에게, 남자친구에게, 신혼의 아내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숙소와 풍광이 뛰어났습니다.


맨발로 해변을 걸었습니다. 신발들이 거추장스러워지자, 구소장님이 긴 막대기를 주워 신발을 줄줄이 꿰어서 2기 조교와 함께 어깨에 메었습니다. 그 뒤의 우리는 마치 원시적인 제례를 올리기 위해 추장을 따라가는 부족같았습니다. 물론 그 의식은, 꿈과 나다운 삶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지요. 자기를 내려놓으니, 재치있는 유머가 쏟아지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해변에 퍼졌습니다.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걸어간다는 흐뭇함에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


밤늦도록 해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OB와 YB로 나누어 닭싸움을 하다가 모래사장에 곤두박질하기도 했습니다. 세대와 취향을 넘어, 노래가 섞이고 마음이 섞이고 시간이 무르익었습니다.


좋은 커뮤니티 하나가 이렇게 많은 기회와 자극과 만남과 즐거움을 줍니다. 수명연장과 자기실현의 시대에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크게 부각됩니다. 그대를 더욱 그대답게 하는 커뮤니티를 찾아 보세요. 나는 찾았습니다. 일상의 안위보다 창조를 우선으로 하는 내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습니다.

Posted by 미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