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적적 경험 또는 플로우는 삶의 진로를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소외감은 참여로 바뀌고, 즐거움은 지루함을 대체한다. 또 무력함이 통제감으로 전환되며, 외적 목표를 수행하는 데 소비되었던 심리 에너지는 자아를 강화하는 데 쓰인다. 경험이 내적으로 보상을 받을 때 삶은 미래의 가상적 보상에 저당 잡히는 대신 현재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low"에서 -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내 경우에는 20대에 농촌활동에 몰입했을 때, 하던 일을 확장했을 때, 李씨 성을 가진 누군가에게 빠져 있었을 때, 그리고 글쓰기에 몰두한 지금을 들 수 있습니다.


무엇엔가 혹은 누군가에게 몰입해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대상과 하나가 됩니다. 이럴 때 시간은 눈깜빡할 사이에 흘러가버리기도 하고 아예 정지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되는거지요.


무아無我의 경지, 잠시나마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경험입니다. 이런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 을 하고 나면 이미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관계없이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모든 심리에너지를 몰입시키면, 이전에 개별적인 자아였을 때보다 훨씬 커다란 활동체계의 일부가 됩니다. 자아가 확장된 것이지요. 제대로 사랑을 하고나면 대박성장을 하게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런 몰입을 자주 할 수 있도록 의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저절로 행복해지겠지요. 몰입을 하지 못하는 성격부터 이야기하자면, 선천적으로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도 있답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신경을 쓰는 과도한 자의식도 즐거움을 누리는 데에 장애가 되겠지요. 그 다음에 자기중심적 성격을 들 수 있는데요, 자기중심적 성격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잠시 몸이 굳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몸담아왔던 오류를 직시하는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사소한 것조차도 그것이 자신의 바람과 얼마나 일치되는가를 따져서 평가한다고 합니다. 완전히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자의식이 구조화되어 있으며,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의식 안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지요. 언어와 기질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차단되는, 내 못된 습관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해서 나의 경험과 관계망은 형편없이 축소되었지요.


반면에 최적경험 - flow를 자주 접하기 위해서는 자기목적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목적이라는 말은 사회가 주입시킨 목표가 아닌 스스로의 목표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미래의 이익에 대한 기대없이 행위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일 -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나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즐기기 때문에 교육하는 것, 사회적 성취에 따라오는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절박하고 즐겁기 때문에 행하는 모든 일들이 거기에 해당됩니다.


엄청나게 확대된 물질과 선택의 자유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군요. 즐거움을 맛볼 기회가 많아졌지만, 기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봅니다. 사회적인 통제나 문화적인 각본이 써주는 목표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을 따르는 일, 오감을 열고 대상과 합일하는 경험에 빠져보세요. 그것이 삶이 주는 참 보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인 쾌락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자아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쾌락과 즐거움의 차이는, 우리의 자아에 복합성을 추가하여 확장을 가져다주는가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신이 빠져있는 그 행위, 혹은 그 사람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될듯합니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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