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휴대하고 다닌다? 이 표현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책 ‘Flow’에서 보았다. 詩든 미적분이든 상징체계에 익숙해진 사람은 머릿 속에 일체가 완비된 휴대용 우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머릿속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상징체계가 있기 때문에 강제수용소나 극지 탐험같은 극한상황에서도, 외부의 자극에 구애를 받지않게 된다.

아주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내적 상징체계가 있는 사람은, 유행이나 대세에 현혹되지 않고,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낸다. 명확한 자기세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다른 세계에 반응할줄도 안다. 무언가를 창조해낼 도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다. 결국 그는 내가 理想으로 생각하는 창조인, 단독자이다.

그 책에 나오는 사례를 하나 이야기하면, 내가 ‘휴대용 우주’에서 받은 느낌을 전달하기 쉬울 것같다.

티보르는 공산주의 헝가리 시절 독방감옥에서 몇 해를 보낸 시인이다. 수백명의 지식인이 감금된 비게그라드 감옥의 재소자들은, 벽을 두드려가며 어렵게 소통한 끝에 시 번역대회를 하기로 했다. 종이도 없고 쓸만한 도구도 없는 상황에서 티보르는 구두 밑창에 비누를 칠해서 엷은 막을 만들고 이쑤시개를 사용해서 글자를 새겨넣고, 한 행을 외우면 구두에 다시 새롭게 비누칠을 했다. 얼마 후 수십 개의 다른 번역판의 시가 감옥에서 만들어졌고, 우수한 시를 가리기 위해 투표에 부쳐졌다.

총을 든 교도관들이 옥죄어오는 감옥에서도, 그의 머리에는 시와 이미지가 물밀듯 떠올랐다. 다른 죄수들은 고스란히 감옥 안에 갇혀있었지만, 그는 머리 속에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휴대용 우주’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순전히 정재승이라는 필자 때문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 뇌공학과 교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2002’, ‘과학콘서트, 2003’ 단 두 권의 저서를 가지고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필자로 떠오른 그가 몇 년간의 공백을 메우고 ‘한겨레21’의 고정컬럼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쌩뚱맞게도 그가 들고온 주제는 ‘사랑학’이다. 지난 학기에 카이스트에서 ‘사랑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던 모양이다. ‘사랑학’의 연구결과는 이런 것들이다.

하나, 첫 만남에선 자이로드롭을 함께 타라
이유인즉 육체적인 흥분을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대학입학이나 해외여행같은 새로운 상황은 물론, 부모의 죽음이나 애인과의 결별 같은 상실을 경험한 뒤에도 이성에게 쉽게 끌린다고 한다.

두울, 사랑은 왼쪽 귀에 대고 속삭여라. 왼쪽 귀와 연결된 우뇌가 감정조절에 관여하기 때문에, 왼쪽 귀로 들었을 때 더 정확히 기억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체험을 관통하는 ‘사랑의 과학’도 재미있지만, 나는 정재승이라고 하는 필자에 더 관심이 갔다.

과학이 인문학, 사회학, 문학과도 통한다는 것을 쉽고 풍부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상대성원리를 교향곡으로 시작한다든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를 이어서 뒤통수를 치는 글을 좋아한다는 그가, ‘사랑’을 연구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무엇이든 관심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깊이있는 연구와 맛깔난 저술을 통해, 독자의 시야를 1인치 더 넓혀줄 수 있는 준비된 필자 정재승, 그야말로 ‘우주’를 자유자재로 ‘휴대’하는 것이 아닌가.

‘과학’이라는 기본적인 도구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학문에 접근함으로써, ‘우주’를 무한대로 넓혀갈 수 있는 그가 부럽다. 나는 늦었을까. 그가 말한다.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결코 한 우물만 파는게 아니라 우물을 두 세 곳을 파고, 그 우물 사이에 지류를 내는 사람일겁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책읽기에요. ”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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