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에 ‘5천만의 꿈, 5천만의 역사’라는 꼭지가 있다. 구본형은 그 꼭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개인사 한 장면씩을 사진첩처럼 모아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 한 장면씩을 역시 모아두려고 합니다.
이 장면들이 모두 모이면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미시적 현세사이고 미시적 비전이 아닐까요?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당신의 역사의 한 장면, 꿈의 한 조각을 남겨놓으세요. 첫째, 당신의 생애 중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남겨놓으세요. 가장 아름다울 필요는 없습니다.그러나 그 순간이 있어 당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게하는 그런 환한 이야기 하나 들려주세요. 둘째, 앞으로 당신에게 찾아올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만 미리 알려주세요. 아마 당신의 꿈들 중 하나겠지요. 그래요, 아주 아름다운 꿈 하나 적어주세요.”


이 짧은 글에는 개인 구본형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많이 숨어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꿈’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극 권장되지만, 대학생만 되어도 사용하지 않게 되는 이 단어를 구본형은 성인들을 위해 살려내었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직장인이 많다는 것에 주목하고, 생긴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꿈’이라 지칭하였다. 변화경영연구소에는 2박3일간 합숙하면서 내면의 꿈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내 꿈의 첫페이지’라고 부른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은 꿈벗이라는 이름으로 기별로 혹은 전체적으로 커뮤니티를 유지한다. 최근에는 ‘꿈벗재단’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성인이 되면서 폐기처분되는 단어인 ‘꿈’을 직업화했다는 사실이?
변화경영연구소를 찾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구본형의 저서를 보고 모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당히 동질적이다. 경쟁적이고 물질적인 사회생활보다는, 이상적인 경향을 갖고 있어서 창조적 소수자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많다. 심한 경우 미운 오리새끼나 아웃사이더로 외곽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서로 알아보는 기쁨은 말할 것이 없다.
아파트와 재테크와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점령한 사회에서 전쟁처럼 살다가, 꿈을 이야기하는 이 곳에 오면 청정지역처럼 공기가 순해진다. 그들은 마치 대학신입생처럼 꿈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없는 위안을 받는다. 이 곳에서 느끼는 일체감을 한 젊은이가 잘 표현했다. 꿈벗 전체동문회를 마친 다음날 출근해서 직장동료와 나눈 대화이다.
“은혜 많이 받았어?”
“교회모임 아니었는데?”
“그래? 난 하도 좋아하길래 신흥종교인줄 알았지.”


그 다음에는 ‘장면’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구본형은 ‘하루’에 독특한 지위를 부여한다.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조차 벼르고만 있지, 막상 출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데서 기인하는 것일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자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생을 잘 살려고 벼르지 말고, 오늘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라. 그러다보면 인생을 잘 살게 된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하루’와 ‘지금’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종종 ‘장면’의 포착으로 나타난다. 연구원에게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을 그려보라는 과제를 주는 식이다. 이런 방법은 시각화 visualization와도 관련이 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상태를 머리 속에 그려봄으로써 자극을 받고,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장면’과 ‘하루’가 모이면 ‘일상’이 된다. 구본형은 일상예찬가이다.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하루를 잘 경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일기를 묶어 펴낸 책의 제목은 “일상의 황홀” 을유문화사 2004 이다.


‘이야기’라는 단어도 아주 중요하다. 그는 자신을 스토리셀러로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우리들에게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라고 역설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역사 속에 묻혀가는 이름없는 대중이기를 거부하라고 강변한다. 기록하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라. ‘나의 이야기 Me 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지난 일에 대해 쓰다보면, 해보지 못한 일들이 부각된다. 이 때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구본형은 40대의 10년을 “구본형의 변화이야기”휴머니스트 2004 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앞으로도 10년에 한권씩 Me Story를 펴내겠다고 한다.


‘꿈’, ‘하루’, ‘기록’ 같은 메시지는 그대로 날아와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기꺼이 그의 전언을 내면화하고, 그의 방법론을 따라해 볼 생각이다. “저자가 직접 실험해 보지 않은 자기계발론은 사기다” 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직접 실천해 본 방법만을 이론화하고 프로그램화했다. 그래서 실천으로 증명된 그의 방법론은 힘이 있고 신뢰가 간다. 언행일치-그의 가장 큰 덕목이다. 그로 인해 구본형은 그냥 저술가가 아니라 역할모델로 거듭난다. 교육이 별 것인가. 나 닮아라, 나 닮아라 하고 향기와 흡입력을 발산하는 역할모델이 아닌가. 젊은 연구원들은 구본형을 사부라고 부른다. 나는 나이차이가 별로 안나서 ‘소장님’이라는 공식적인 호칭으로 부르지만, 구본형은 師父 맞다. 역할모델이 사라진 척박한 시대에 스승이 될 수 있는 분이다.


그의 컬럼을 통해 인상적이었으며, 그의 일상을 통해 생활로 구현되는 몇몇 메시지를 좀 더 정리해 보았다. 그의 메시지는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내 안의 나’를 일깨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나를 읽는 행위라더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와 같은 셈이다.

그의 메시지 중에 내가 가장 서툰 부분은 ‘사람’에 대한 부분이다. 그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원칙 중의 원칙인 셈이다. 그것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자신의 마음이 사람이 떠난 빈 집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연구소에 모이는 사람들의 동기가 오로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어야 한다고 갈파한다. 어떤 의미있는 활동도 그 다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란 두루뭉실하고 추상적인 이름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연구원 미팅에서 그가 인사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전체적인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눈을 맞추고 관심을 표명하는 방식이다. 옷의 색깔을 언급하기도 하고, ‘뭔가 달라졌는데 그게 뭐지?’ 하며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방식이요 tip이 될 수 있다. 마케팅의 영역에서 보면 관념적인 고객이 아니라, 내 앞에 내 서비스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첫 번 째 책을 쓰면서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많은 독자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헤매고 있는 知己를 그리는 것이다. 나도 그대와 똑같은 어려움과 방황을 거쳐왔지. 그러나 나의 삶은 소중하기 때문에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냈어. 사실 나답게 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다는 것인지 상상도 할 수 없잖아. 나와 같은 길을 가자. 나의 師友가 되어줘. 나는 혼자서도 갈 수 있지만, 그러나 그대가 있었으면 해. 구본형은 사람을 구체적이고 특수한 개인으로 대하는 방식을 데레사수녀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이 불세출의 수녀님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마음에 품고 살았고, 실천에 옮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번에 단 한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만일 내가 그 사람 하나를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뿐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


이렇게 ‘단 하나의 사람’을 만나서 최선의 자아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다름아닌 ‘인정해주는 것’이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 한다. 하지만 이처럼 명백한 진실을 알고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본형은 그것을 알고 행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다. 칭찬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다.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말라. 그러나 아무 때나 칭찬하지 말라. 남발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방식의 칭찬이 둘을 가깝게 해 준다.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일을 만나게 되면, 감탄의 눈빛으로 한 번 봐 줘라. 그 눈빛이 천 마디 말보다 위력적이다. 칭찬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마움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칭찬의 방식을 몇 개 가지고 있는 사람은 훌륭한 처세술을 가진 사람이다. ”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로 평가한다. 그러나 남을 평가할 때는 ‘그가(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가’로 평가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남을 평가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통해 자신을 평가한다. 따라서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으면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누군가를 가까이 하고 싶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물어주고 믿어 주는 것이 좋다.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박수갈채다. 그 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최고의 동료라 할 수 있다.”


구본형의 생활철학에는 유머와 시도 있다. 모든 성숙한 인격들이 강조해마지 않는 유머 - 빅터 프랭클과 고든 리빙스턴처럼 역경을 견뎌낸 사람들조차 유머를 강조했다. 삶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알면 역설적으로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유머는 고난에서 나온다. 삶의 깊은 체험에서 나온다.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힘써 배워 써먹어야 하는 생활철학이다. 구본형역시 웃음이 깨달음인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시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에 관한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내게 ‘시처럼’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표현의 비약과 함축이다. 일일이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고, 때로는 침묵조차 좋은 언어가 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매력적이다. 마음의 흐름, 눈빛, 이심전심의 비언어적 언어가 가능하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나는 어떤 경우 이런 삶이 가능하고, 그런 관계가 가능한 인물들이 내 삶 속에 등장하게 될 것을 꿈꿔왔다.


‘시처럼’이라는 말의 다른 하나의 의미는 생각과 상상이 현실과 같은 비중으로 삶 속으로 접근해 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녀와의 사랑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커다란 그리움으로 실재하기도 한다. 상상 또한 아름다운 실재라는 점에서 그리고 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지금은 시가 사라져 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삶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는 곧 세상의 빛나는 언어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기계들은 비약과 함축과 침묵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즐길 수 없다. 시처럼 인간적인 것은 없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빛나는 교신인지도 모른다. ”


2004년에 구본형은 몽골로 말타기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시로 남겼다.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다. 유머와 시를 결합시킨 셈이다. 나는 낄낄대며 이 여행기를 읽었다. 내게 유머감각이 없다는 것이 서운했다. 우선 다른 사람의 유머에 크게 웃으면서 연습해봐야 하겠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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