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알렉스 파타코스, 의미있게 산다는 것



이런저런 일이 꼬이고 힘들 때, 당신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나는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랩니다.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를 순전히 그런 의도로 구입했었지요. ‘구미 유학생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13년 2개월을 복역한 이.


책갈피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었지요. 몇 년 전 우리 학원에 다니던 여자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일이 있는데, 우연히 그 아이의 사진이 있는 거예요.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느라 교회에 다녀오던 길이었지요.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힘들 때마다 그애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답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모두 살아있으니까 겪는 일이구나, 이렇게 어린 나이에 더 이상 살 수 없는 아이도 있는데... 시적으로 말하자면 ‘산 자만이 걸치는 옷’인 셈이지요.


그런데 오늘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껏 내가 어렵다고 징징댄 것이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흠뻑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빅터 프랭클, 1942년 9월 나치스에게 체포되어 3년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한 정신의학자, 맞습니다. 암울한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부모형제와 아내를 모두 잃고도, 참혹한 환경에 대응하는 인간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여 평생을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헌신한 사람.


프랭클은 말합니다. 삶은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하는 결정의 산물이라고. 수용소같은 극단상황에서도, 남을 위해 빵 한 조각을 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얘기지요.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우리의 반응을 선택하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우리가 항상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현재의 모든 순간에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할 일은, 일상생활과 일에서 의미에 눈을 뜨고 발견하는 것이겠지요.
실패 좀 하면 어떻습니까, 인생은 성공만큼이나 실패로 점철될 수 있어요. 하지만 실패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만 실패가 유용한 유산이 되겠지요.


무슨 일이건 인간관계건 끝장났다고 생각이 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정을 소중히 한다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될 겁니다. 우리가 의미를 찾으려는 의식을 놓지 않았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무한한 성취감을 경험하게 될꺼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 해도 거기로부터 또 다시 의미있는 목표가 생긴다는 거지요.

결국 프랭클이 말하는 것은 이겁니다.
삶은 우리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의미가 있다.


그래도 유독 삶이 자기에게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메아리 얘기를 더 해 드릴게요.
아들과 아버지가 산길을 걷고 있다가 아들이 넘어져서 비명을 지릅니다. “아야야야야”
놀랍게도 산 속 어딘가에서 따라 합니다. “아야야야야”
아이가 신기해서 다시 외칩니다.
“난 널 존경한다!” “난 널 존경한다!”
“겁쟁이” “겁쟁이”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아들아, 잘 들어봐라
사람들은 이것을 메아리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돌려준다. 우리의 삶은 단지 우리가 하는 행동의 반영이다. 만일 네가 세상에서 좀더 사랑을 원한다면 네 마음 속에 더많은 사랑을 만들어라. 만일 너의 팀이 좀더 잘하기를 바라면 네 자신이 더 잘하려고 노력해라. 이 관계는 인생의 모든 부문에 적용된다. 인생은 우리가 준 모든 것을 돌려준다. 우리의 인생은 우연이 아니다. 인생은 우리의 반영이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직접 읽어도 좋지만, 저는 프랭클의 사상을 자기계발서에 접목한 알렉스 파타코스의 <의미있게 산다는 것>이 더 좋군요. 어쩌면 한 줄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읽는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는, 이만한 두께의 이만한 호소력을 가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랭클이 인간성을 구분하는 특성으로 유머감각을 꼽았다고 하는데, 유머에 대해 파타코스가 기술해 놓은 부분은 정말 아름다워요.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모든 진지한 상황에서 간장을 완화해준다. 진지한 업무 상황에서는 어는 정도의 유머가 필요하다. 유머는 다른 사람들에게나 우리 자신에게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머는 위대한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에 유머를 가져가는 것도 역시 선물이다. 유머는 훌륭한 평형장치다. CEO를 덜 무시무시하게, 택시 운전사를 더 친절하게 만든다. 비극이 닥치면 깊은 슬픔에 빠지지만 슬픔을 극복한 후에는 쾌활해진다. 삶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면 배우 잭 니콜슨이 말했듯이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진정한 쾌활함은 가식적이지 않다. 그것은 세상의 무게나 날씨와 상관없이 현재를 경험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쾌활함은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실제로 적절한 유머는 그 무엇보다 빨리 우리 스스로 자초한 불행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자신의 처지에 거리를 두고 볼 때 문제점을 축소하지 않고 넘어설 수 있다. 우리 자신을 고통과 분리해서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극복한다.


유머는 자기보전을 위한 투쟁에서 또 다른 정신적 무기였다
자기이탈과 부정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이탈은 의도적이고 행동 지향적이다.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반면에 부정은 경험과 경험이 줄 수 있는 장점에서 우리를 분리시킨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면 다른 사람들의 경험도 부정하게 된다. 부정은 연결을 끊어 놓는다. 반면 자기이탈은 연결과 학습과 성장으로 이어진다.


책에서 읽은 것에 그치지 않고 맘먹고 유머를 연습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하겠어요? 또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의미를 찾는 습관도 노력해야겠어요.
결국 알고 보면 모든 상황이 의미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책에 몰입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책 읽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데가 있어서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살짝 지쳐있는 당신도 이 책을 읽고 ‘의미를 찾는 훈련’을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혹시 나와 달리 감동이 조금 덜하더라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 읽은 것들이 씨앗이 되어 당신의 안에 있다가 다음 번에는 좀 더 확실한 만남이 가능할테니까요.


확신은 그 출발이고, 기쁨은 그 일부이며, 사랑은 그 중심이다

 
Posted by 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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