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을 하는 어떤 분이 개인사무실을 공개하여, 페이스북을 기조로 하는 북컨텐츠를 생산하는 산실인데요,
사회자로 활동하는 분들이 열 팀 정도 된다고 하네요.
일반 직장인들의 순수한 활동 차원이지요.
스튜디오는 조촐하고 아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마이크테스팅 시간, 촬영하는 분이 5,4,3,2,1 사인을 주셔서 제법 생방송 기분이
났습니다.
온오프를 겸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뜬 질문을 받아 답하기도 하고, 꽤 실험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좌담이 끝나고 본격적인 네트워킹이 이루어질 텐데, 저는 그 자리에 가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인맥을 넓히고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딱이다 싶네요.
고정적인 참여자층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작할 때 까지만 해도 스무 명이나 될까 하던 인원이 보조의자를 늘어놓을 정도로 꽉 차더라구요. 50여 명 되어 보였습니다.
앞에서 쏘아대는 조명이 환하고, 사회자와 방청객들이 있기는 하지만 늘 하던 강의와 그다지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식의 공개적인 담소 장면에서 쫄지 않는 요령이 생각나는 것이 있어 정리해 봅니다.
분명 '토크쇼'이긴 했지만, 주로 공중파가 이런 표현을 점령하고 있으니 위 제목은 다분히 낚시성입니다.^^
첫째,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완전히 숙지하여 메모를 보지 않아도 술술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
계속 강의해 오던 내용인데다 최근 2주일 동안 개정판 원고작업하느라 집중한 데서도 사례가 두 어 가지 떠올라주더라구요.
혹시 싶어 메모를 준비했지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둘째, 방청객 중의 한 사람에게 주목하여, 그 사람에게 말한다는 간곡함을 담을 것.
이 방법은 글 쓸 때도 유효한데 말하기에서도 생각나더라구요.
방청객들은 주로 30대 직장인으로 보였고, 연배가 있는 분도 몇 분 눈에 띄었는데 그 중에 유독 진중해 보이는 한 분에게 마음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일단 마음이 편안해지면 이 진솔함을 방청객 전부에게로 확대할 수도 있어서 골고루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하면 딴짓하지 못하고 시선을 주목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하품하는 사람 딱 한 명 보았습니다. 그것도 딱 한 번만요.^^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나의 마음상태를 자꾸 들여다보면 쫄밋거릴 일 밖에 없으니 과감하게 외부로 관심을 돌리는 것입니다. 스튜디오는 어떻게 생겼나,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나, 사회자의 질문포인트는 무엇인가, 방청객으로 와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일까 신경을 외부로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평온해 지면서, 그들에게 해 줄 말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그동안의 강의경험이 도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저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도움이 되는 거지요.
전에는 나 혼자의 믿음을 혼자 공중에 살포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대상의 급소에 대고 레이저를 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러니 수강생들이 제일 고맙습니다.
나는 남의 자리에 가서 힘이 되어 준 적이 거의 없는데, 시간을 내어 저 자리에까지 와 준 사람들은
벚꽃 한 번 제대로 올려다 보지 않았는데 어느새 지기 시작했다. 이 비 그치면 영영 올해는 그만일 것 같아 산책을 나선다. 아니나다를까 산책로에는 온통 벚꽃잎 투성이다. 도로며 철봉, 벤치가 일제히 땡땡이 무늬를 하고 있고, 개나리와 진달래 위에도 천연덕스럽게 올라 앉아 있다. 꽃과 잎이 반반인 벚나무들 때문에 숲은 마치 점묘화법으로 그려놓은 수채화같다. 휘적휘적 걷고 싶어 우비를 입고 나섰는데, 얄팍한 비닐 우비로도 가릴 수 있는 이슬비가 와 주어 고맙다. 억지로 따라 나선 아들놈 짜증내기 전에 되짚어 오느라 딱 한 시간짜리 산책이었지만, 저 붉은 흙만큼이나 진한 시간이었다. 일전에 어떤 수강생의 글 속에 오래 병원생활하던 아버지께서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네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싶어" 하셨다는 문장에서 마음이 탁 멈춰 섰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니 오늘 하루, 빗길에 한 이 산책도 모조리 화양연화.
4월 14,15일 변경연의 연례행사인 봄소풍이 있었다. 관광버스를 안 타고 같은 지역에 사는 B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우연히 M까지 연결이 되어 셋이 가게 되었다. 가볍고 사교적인 화제에 약한지라 이런 상황에 종종 불편해지곤 하는데 아주 편하게 갔다. 세 명이라는 숫자가 함께 이야기 나누기에 적당했고, 이제 첫 책의 초고를 완성한 B가 책을 두 세 권 펴 낸 M과 나의 경험을 경청해 주었기 때문이다.강릉까지 4시간 45분, 별로 지루한 줄도 모르고 아주 잘 갔다.
올 때 갈 때 날씨가 더할 나위없이 화창해서, 달리는 차 안에서 핸폰으로 찍은 사진도 A급이다. 한 번 보고 처박아두기 아까워서 남겨본다. 제일 위 사진은 올라오는 길 정선 아우라지 강변의 전원주택들.
연구원 소풍 때면 구선생님께서 가장 풍광좋은 곳을 찾아 짧지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 주신다. 올해는 멀리 나룻배가 떠있는 아우라지에서 '물의 속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서너 가지 되었는데 다른 것은 잊어버렸고,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만 물은 흐를 수 있다"는 부분이 내게 와서 콕 박혔다. 웅덩이... 내가 가장 안 되는 것이 뭐였더라? 나의 맹점, 나의 고질적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진심으로 낮아질 때, 그 때 비로소 바다로 향할 수 있으리라.
토요일 밤 올해 들어 온 8기 연구원들이 장기자랑도 하고, 흥겹게 놀던 끝에 8기 웨버가 건배제의를 할 때였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인데 '인사불성'을 가지고 4행시를 하고 싶었나 보다. 우리들에게 운을 떼어달라고 주문하여 마음을 모아 한 목소리로 운을 떼어 드렸건만 그는 3차 4차에 이르는 시도 끝에도 끝내 시원스러운 4행시를 들려 주지 못했다. 그의 어이없을 정도로 순진한 모습은, 너무나 세련되고 능숙한 것들로 가득찬 요즘 세태에 귀하디 귀한 것이었다.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지만 그것은 결코 누군가를 흉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 반대였다.
2기인 나는 대략 6기 연구원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렇다보니 이전 기수의 익숙한 얼굴들이 마냥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낯만 익지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고, 예전 어느 소풍보다도 편안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 방에서 바다가 보이는 강릉 옥계 여성수련원, 숙소까지 베리굿 - 굳이 나를 내세우지 않고 배경이 되어도 좋은 자리, 그런 모임이 있어서 참 좋다.
홍성강좌의 끝날, 예고한 대로 어죽집 하는 멤버가 우리를 초대했겠다, 이런, 벌써 8년 전쯤의 일이지만 나도 두 세 번 가 본 곳이 아닌가. 허름하지만 음식 맛 좋고 후하기로 소문나서 손님 꼬이는 그런 집 중의 하나였다. 잠시 추억에 젖어 반가운 마음에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전형적인 시골집, 아직 그대로다. 쥔장이 작은 들통에 끓여 온 대추차를 보며 감탄, 그새 도시 사람이 되었나 푸짐한 마음씨에 감격한 거다. 내 첫책을 선물했더니 그이도 기뻐해 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한 상 푸짐하게 차려내 온 점심을 먹다. 오리백숙과 주물럭, 그리고 이어지는 어죽과 볶음밥... 요즘 주로 먹는 정체불명의 퓨전 음식에 지쳤나 모처럼 먹어보는 '어른 음식'에 환호, 맛있게 먹었다. 쥔장은 수업도 채 못 듣고 들락날락하며 대접하느라 바쁘다. 텃밭에서 푸성귀를 가꾸어 식당 꾸려가느라 정신없이 바쁘다면서도 이렇게 일을 자청하는 부지런함과 넉넉함이 미쁘다. 얼마를 가졌든 무슨 일을 하든 이것이 기본적인 사람됨이다. 넉넉한 사람은 참 보기 좋다.
가곡저수지의 주변 풍경, 아기 손톱만한 '개불알꽃'이 피고, 목련꽃 봉오리 있는 대로 살오르고, 통통한 강아지 두 마리가 사람구경하러 다가오고, 살랑이는 바람 속에 일제히 봄을 예고하는 들판을 한없이 걷고 싶어진다. 전에는 조잡하게 느껴지던 물레방아 같은 구조물들이 어찌나 정겨운지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다.
핸폰 사진 화질이 디카보다 좋다. 널판지로 지어놓은 창고의 색감이 왜 이렇게 좋으냐. 이번 강좌의 유일한 남자분이 "햇님나물 새 순 돋을 때 한 번 만나 후속모임을 의논하자"고 안을 내놓는다. 나무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세심한 감수성과 풍류가 느껴지는 표현에 또 감탄, 아무래도 그날 기분이 너무 풀렸다. 식사 중에 받아 마신 포도주 석 잔 탓인지도 모르지.
근데 내가 제대로 들었나 햇님나물이 화살나무의 새 순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온 몸이 화살 모양으로 이야기만들기 좋은지라 시에도 자주 등장하고 단풍이 고와서 나도 아주 좋아하는 화. 살. 나. 무.
6주 간의 홍성 강좌가 한 번 남았다. 오후에 일하는 분들이 있어서 시간이 일찍 잡혀 9시 반에서 12시. 그 시간에 대려면 5시 40분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판판이 놀다가 어쩌다 한 번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새벽에 거리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일용직 노동자를 태우는 승합차며 오가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느라 서 있는데 인상이 험악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가 온다. 얼핏 두려움이 스치는 순간 정류장 바로 뒤의 중개사 사무실 셔터를 드르륵 올린다. 6시 20분에 문을 여는 중개사라~
수원에서 홍성까지 1시간 40분, 채 머리가 맑아지기도 전에 도착한다. 유독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후회없는 수업을 하고 기분좋게 돌아오자고 주문을 외우며 내리다가 물안개 자욱한 풍경에 탄성이 나온다. 물안개 덕분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들판이 한 폭의 수묵화로 변해 있었다. 아침 일찍 나오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풍경에 기분이 좋아져 셀카.
교육장소인 문화원까지 슬슬 걸어도 10분, 아홉 시도 안 되어 이 곳에 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홍성을 떠난 지 6년, 여기저기 아파트가 올라가고 도로가 넓어져 많이 낯설다. 내 인생의 중추부인 20년을 살았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곳이지만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진 않는다. 오후에 지인들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닐 때도, 나는 떠나 왔는데 기억 속의 장면들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신기했을 뿐. 내가 회한으로 가득찬 유형이 아니라 좋다.
지난 날을 곱씹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깔끔하게 정비된 역재방죽 주변이 마음에 들고, 교통까지 편하니 이런 곳에 둥지를 틀어도 좋겠다 싶은 것이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세컨드홈이든, 딸애의 동물체험농장이든, 아들의 공방형 펜션이든 이처럼 주변 환경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경비가 절약되랴.
커다란 저수지에는 청둥오리가 많았다. "철썩!" 날개로 물을 차고 떠오를 때나 다시 물 위로 내려 앉을 때 그렇게 큰 소리가 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물 위를 떠다니는 오리 뒤의 브이자 물결 덕분에 한층 여유있고 평화로워 보인다. 핸폰만 집어 넣으면 날아가는 통에 몇 번이나 아까운 마음이 되다. 저수지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도 마음에 든다. 모래와 자갈로 둑을 쌓으며 노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는듯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초적인 장면의 하나.
강의가 끝난 후 지인들이 바쁜 틈을 쪼개어 나와 놀아 주었다. C와 고암 이응로 기념관에 다녀 온 후 바톤을 이어 받은 S가 청포대에 데려다 주는 데 재미있기도 하고 고맙기 한량없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이렇게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처럼 내려 온 누군가를 위해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쓸 수 있는 마음, 한 쪽은 베풀고 싶고 다른 쪽은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내 단골바다인 청포대, 적어도 6년 만에 갔을 텐데 어제 갔다 온 것처럼 익숙해서 만나자마자 시들해졌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간월도에서 먹은 굴밥이 최고였다. 때가 지나 시장하기도 했지만 금방 지어낸 영양밥과 순한 청국장, 간소한 반찬이 분명히 도시의 그것과 달랐다. 차를 없앤 뒤로 외식이라고 해야 뻔한 뷔페나 패스트후드가 된 탓일 수도 있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애들 생각이 날 정도였다.
지난 달에 인사동에서 있었던 J선생님의 전시회에 올라온 홍성사람들. 꽤 분위기있게 나온 핸폰 사진이 신통하기만 하다.
이 번 주 목요일 마지막 수업은 저수지 변의 어죽집에서 행해질 전망이다. 어죽집을 하는 수강생이 우리를 초대했는데 이동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아예 그 곳에서 모여 수업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분을 위시해서 몇 분 글쓰기에 지극정성인 분들이 있어 아주 뿌듯하다. 후속모임이 이루어져 좀 더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재미있게 보았다.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범상치않은 아우라를 뿜으며 나를 사로 잡았다. 어린 세종은 간계와 무력으로 일관하는 아버지 태종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라고 하는 거대한 세계의 폭력성과 이질성 앞에 번뇌하고 또 번뇌한다. 아버지의 방법을 거부하는 만큼 자신의 방법을 세울 수 있을까 하는 고뇌는 송중기의 연기변신을 통해 시청자에게 오롯이 전달되었다.
나약하고 관념적인 아들을 조롱하며 과격하게 몰아세우는 한편, 아들의 홀로서기를 종용하는 듯한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 또한 이제껏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중층적이었다. 백윤식이 아니고는 보여줄 수 없는 내면연기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숙명적인 관계를 넘어 ‘문’과 ‘무’로 축약된 세계관의 문제, ‘왕’으로 대변되는 리더의 운명으로까지 번져가는 의미성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거듭되는 격한 갈등 속에 태종이 죽은 후 어린 세종은 일성을 토해 낸다. “이방원이 없는 세상이다!” 이제 그는 그토록 반목해 온 아버지와 다른 통치, 다른 세상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가 택한 것은 글자이다. 그러고 보니 수긍이 간다. 한자를 첨병으로 한 중화사상의 시대, 양반이 학문을 발판으로 백성을 지배하는 신분질서가 시퍼렇던 시대에, 모든 백성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위험한 발상인지를 알겠다. 비록 허구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음직한 개연성을 가지고 펼쳐지는, 한글반포를 둘러싼 심리적이고도 정치역학적인 드라마를 통해 흘려듣던 한글의 위대함이 가슴에 새겨진다. 대단한 상상력의 원작에 노련한 각본과 연출이 옷을 입힌 웰메이드 드라마 한 편의 위력에 무릎 꿇고 싶어진다.
좋은 드라마에는 당연히 뛰어난 연기자가 있다. 장 혁도 언제 이렇게 연기가 늘었나 싶고, 특히 한석규의 혼신을 다 한 연기는 “정말 세종 같아!”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크지않으며 속까풀져 사려깊고 명민해 보이는 눈으로 그는 온갖 감정연기를 다 해 냈다. 태산 같은 장애물을 만나 번민에 빠진 눈, 상대방을 제압할 때의 눈, 측근인 내금위장에게 응석부리는 눈, 극중 이신적과 정치적 거래를 할 때의 눈으로 귀기어린 몰입을 보여 주었다. 그런 세종이 거듭하는 대사가 있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채윤에게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니” 하고 말하는가 하면, 한글반포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최면처럼 되뇌인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나는 이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방법을 거부한 아들의 선택이자,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야만 하는 왕의 결단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었다. 그 하나의 선택을 위해서는 아들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결코 무력 못지않은 결연함과 고뇌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가고 또 갈 수 밖에 없고 그 끝에 비로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하나가 피어난다는 것을 드라마 속의 세종은 여실히 보여준다. 드라마틱한 비장미가 필요했는지 최종회에서 세종이 의지하던 무휼, 소이, 채윤이 모두 죽는다.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레이션에서 세종이 "나는 울지 않고 내 일을 했다"고 토로하는 것을 보니, 내가 느낀 대로 이 부분은 작가의 각별한 메세지라고 여겨진다.
잘 만든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길을 간다는 것의 엄정함에 생각이 미쳤는데 좀 더 심각해진 계기가 있었다. 언니가 50평 아파트로 이사를 간단다. 그 집은 전원주택도 있는데...^^ 흔치않은 결혼을 할 때 부모님보다 더 격하게 화를 내던 언니가 떠오른다. 성인이 된 후 몇 십 년의 세월이 휘리릭 몇 장의 장면으로 스쳐 지나간다. 너무나 빨랐던 세월에 아연실색하고, 가치관의 차이, 선택의 차이가 누적되며 벌어진 경제력의 차이에 망연자실하여 비장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게 인생이었어!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인생이라는 책의 페이지가 얼추 넘어갔으므로 결말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다. 운명 앞에 어떤 특혜도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가파르게 사위어드는 오후의 햇살 속에 농부처럼 근면하고, 귀신도 속일 정도로 교묘하지 않고서는 내 삶 자체가 헛발질에 그칠지도 모른다. 나의 방법도 얼마든지 의미있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내 삶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는다. 비록 세종만큼 어마어마하지는 않더라도.
어제 홍대앞에서 변경연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드레스코드가 '롹커'라구요, 저야 평상복 차림으로 갔지만, 가발에 망사스타킹, 캣우먼 분위기로 화장한 연구원을 보니, 다들 작심하고 코스퓨레에 나섰으면 정말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이 뒤미처 들더라구요. 앞으로 2,3년 후면 저도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갈수록 시간은 빠르게 느껴지고, 한 때의 의미도 오래지않아 빛이 바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남는 것은 오직 '순간'밖에 없음을 절감하기 때문이지요. 순간순간 온 힘을 다 해, 미친 듯이 참여하기! 앞으로 모토로 삼으려구요. 제자들이 분장해주는 대로 몸을 맡기는 모습을 뵈니, 구선생님께서는 벌써 그 지점에 와 계신듯합니다.
원래 송년회에서 그 해에 책을 낸 연구원을 중심으로 '올해의 연구원상'을 수여하는 것이 관례인데, 조금 방식이 바뀌었어요. '나는 연구원이다'라는 타이틀로 10분씩 강연을 해서 투표에 부친 거지요. 올해 책 낸 사람이 5명이라 선택하기도 어렵고, 말과 글을 가지고 더욱 다각적인 놀이를 실험해보자는 취지였을 텐데요, 과연 그 취지에 걸맞게 4인4색 저마다 다른 테마와 분위기, 풀어나가는 방식이 실로 다채롭고 흥미로웠습니다. - 1인 불참-
통통 튀고, 화끈하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욕심없이 임했는데 제게 영광이 돌아왔습니다. 2년 전에 첫 책을 낸 후 연구원상을 받기도 했고, 원래 승부욕이 없는데다, 결정적인 순간에 오히려 덤덤해지는 습관대로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거든요. 2위와 불과 몇 표 차이였다고 하네요.
ㅎㅎ 실전에 임할 때는 남의 일처럼 해 놓고 선물은 새록새록 좋네요.^^ 몽블랑 만년필인데 이게 2년 전에 받은 펠리컨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거예요. 펠리컨이 살짝 가볍고 글씨가 번지는 감이 있었는데 그걸 정확하게 잡았네요. 맞춤한 무게감과 사각사각 써지는 촉감이 좋아서 자꾸만 쓰고 싶어집니다. 펠리컨! 미안하다. 이제껏 너로서도 충분했는데 일시에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구나. 몽블랑 피곤해서 쉬게 해 주고 싶을 때 너를 찾으마.
시상하는 장면, 내가 촌스러워서 허깅 잘 못하는데, 연구원 동문회장 이희석씨가 워낙 편안하게 안아주어서 보기좋은 장면이 나왔다.
"출판계약성사 , 문학을 속삭여줄게"라고 쓰인 명찰을 안경 다리에 붙인 사람은 같은 2기인 정재엽씨, 지난 몇 년간 수십 군데의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는데 이번에 계약이 된 출판사에서는 글쎄 기획안 보낸 지 한 시간 만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네요.
결국은 '코드'의 문제였던 거지요. 전에 주제를 좁혀보자는 조언을 했던 내가 머쓱할 노릇이지요. 저자가 되고자 하는 저 지순하고 뜨거운 충심이 보기좋고, 오랜 기다림이 답을 얻은 것이 내 일처럼 기쁘네요. 재엽씨! 이제 홍보전도 같이 시작해야 할 테니 사진이며 실명 올려도 괜찮겠지요.^^
함께 나이들어 가는 부부는 뒷모습도 닮았다. 아침 7시 반, 나로서는 엄청 이른 시간에 나선 산책길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사실이다. 내 연배 되어 보이는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몸매가 붕어빵이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크지않은 키에 둥근 몸매가 온유해 보이기도 하거니와 손을 꼭 잡고 보폭을 탁탁 맞춰 걸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좋은지 한참을 따라가며 바라본다.
기온이 뚝 떨어져 점퍼에 든든한 목도리를 둘렀는데도 한기가 느껴진다. 가랑비가 내려 땅이 살짝 젖어 있고, 대기도 축축하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슬쩍 비치는 햇살과, 저 멀리 겹쳐 선 산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운무가 멋있어 슬슬 감정이 고조된다. 낯설다. 거의 매일 다니는 그 길이 아니다.
마음에 슬쩍 윤기가 도니 가드레일에 맺힌 이슬방울까지 아름답다. 핸폰 카메라로 보는 연산홍의 색감에 탄성이 나온다. 떡갈나무 잎사귀 수북히 쌓인 저 골짜기는 마음의 고향 미탄면을 떠올린다. 오며가며 이 골짜기가 마냥 정답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떠꺼머리 동네 머스매들이 나무하러 가는 길을 따라 갔었지. 나무를 가득 쌓아 올린 지게를 미끄럼타듯 먼저 내려 보내던 지겟길, 딱 그 숲을 빼닮은 것이다. 어른들에게는 고운 대답 한 번 하는 적 없이 불끈대는 성격이지만 내게는 한량없이 잘해주던, 얼굴에 여드름이 숭숭 나 있던 누구, 순딩이 도련님 누구, 말이 없고, 건드리지않으면 감정표시도 거의 않지만 속깊은 정이 느껴지던 누구누구의 얼굴이 스쳐간다.
어느새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구름이 벗어지며 하늘은 제 색깔을 찾았지만 으쓸으쓸 한기가 도는 것이 뜨듯한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뭐 안 될 것도 없지. 행궁길로 들어선다. 문화의 거리로 재정비라도 하는지 벽면 꾸미기가 한창이다. 군데군데 몇 십 년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들의 음식점도 눈에 띈다. 큰 길을 건넌다. 찾았다, 콩나물 국밥집이 있다! 가격도 착한 4000원. 국밥을 주문하고 앉아있는 사이에 쌀과 계란을 배달하고 간다. 계란 다섯 판을 들여놓은 청년이 화요일에 오겠다며 인사를 한다. 사흘 동안 계란 다섯 판을 소비하는 규모, 이 집의 매출이 짐작된다. 무심한 아침산책에서 사람들 사는 모습에 성큼 다가 선 기분이다. 겨우 9시, 평소의 주말같으면 아직 잠자리에 있을 시간인데... 가끔은 작정하고 안하던 일을 해봐야겠다. 그것이 새로운 감흥을 불러내는 첩경이리라. 오늘 발견한 것 두번 째. 국밥이 나왔다. 맛있었으면 좋겠다.
한 달 전에 있었던 대구부산 강의의 후속모임이 잡혔다.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부산에서는 3시간짜리 1회, 대구에서는 5시간씩 이틀. 두 군데 모두 8명 내외의 조촐한 규모지만 내가 뿌린 씨앗이 움튼 것을 보듯 뿌듯하다.
수원에서 부산 가는 ktx가 많지 않은지라 강의시간보다 턱없이 이른 차를 예매했는데, 출발시간이 임박할 수록 피곤하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벌써 5년 전 일이지만 딸과 함께 한 부산여행이 너무도 생생한지라 부산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는데 차편에 맞추느라 어거지 관광을 한다는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생각을 반박하는 논지도 만만치 않다는 것.
니가 기억하고 있는 부산에 대한 인상은 어쩌면 지극히 파편적이고 임의적인지도 몰라. 그리고 세월이 5년이나 흘렀어. 태종대든 국제시장이든 다시 한 번 돌아보면, 그 때의 기억을 뒤집거나 보완하는, 아니면 아주 색다른 장면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잖아. 늦게 출발해 봤자 좀 더 늘어지기밖에 더 하냐? 부산까지 가는 걸음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결과는 게으름의 승리!^^ 언제나 그래왔듯 마음가는 대로 하자, 사흘이나 강의를 할 꺼니 조금 편한 길을 택하는 것도 좋으리라. 그리하여 오후 6시에 도착하는 새마을로 바꾸어 길을 나섰겠다, 4시간 반이 길기는 길었다. 두 어 시간이 흐르고 몸이 뒤틀려 식당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칸은 텅 비어 있었다. 내 또래 된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커피를 주었다. 그러고보니 식당칸에 이렇게 호젓하게 앉아 있는 것이 처음이다. 일단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가 너무 좋았다. 객실의 내 좌석에 앉은 자세로는 오른쪽을 보거나 왼쪽을 바라보느라 사시처럼 안구를 굴려야 하는데, 여기서는 편안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도 되었다. 거기에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음영이 짙어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세월이 흐르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라는 이름의 말에 올라타고 달리는 것 같았다. 이 색다른 감회에 젖어 들기 위해서는 커피로는 약하고 캔맥주 하나는 있어야 했으니, 나만의 열차 카페에 푹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다음날 일찍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 안, 무심히 내다 본 창 밖 풍경에 화들짝 놀라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에 물안개가 자욱이 끼어 신비로운 산수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울산에서 동대구까지 오는 구간은 특히 아름다워,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산과 저수지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보여 주었다.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마구 찍은 사진도 마음에 든다. 창 밖 풍경과 카메라를 든 내 손을 콜라주한 효과가 난다. 내친 김에 셀카도 하고 풍경에 빠져 있는 동안, 요즘 지나치게 평온한 마음수면에 살짝 풍랑이 인다. 그러니 원래 계획대로 부산에 일찍 도착해서 여기저기 떠돌았더라면, 기대하지 않았던 감흥에 좀 더 부딪혔을지도 모른다는 거.ㅎㅎ
며칠 전에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40대 초의 수강생 몇 명과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그녀가 나를 보고 한 멤버가 엄마를 모시고 나왔는 줄 알았다고 한 것이다. 요즘 40대는 청춘의 끝자락인 양 젊고, 그 날 모인 수강생들이 하나같이 용모단정한 것을 감안한다 해도 조금 과한 발언이었다. 예전 같으면 어이가 없고 불쾌해서 일주일은 곱씹으며 속을 볶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왜 화가 나지 않지?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다가 뜬금없이 그 생각이 떠올랐다. 따뜻한 물 속에 심신을 이완시켜 놓고 있어서인지 그럴듯한 대답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좋게 말하면 화통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심성없이 말하는 사람이로구나’ 초면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내게 보여준 것이고, 나는 내 감정보다도 상대방을 관찰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었기에 기분이 나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은 더욱 번져갔다.
나는 내 외양이 50대 중반의 나이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지도 늙어보이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 자리는 사무적인 안건을 처리하는 공식적인 자리였으므로, 누군가 엄마를 모시고 올 이유가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도 나를 보고 40대의 엄마인 줄 알았다고 한 것이다. 순간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한 장면이 섬광처럼 스쳐 간다.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서른 넘어 대학원에 등록하려는 자신에게, 사무처 직원이 딸 대신 왔느냐는 발언을 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가 열 서 너 살에 아이를 낳았겠느냐고 불쾌해 하며, 그녀는 이것을 연령차별주의의 하나라고 분석한다.
내 경험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든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당연히 아는 것도 없어서, 마흔인 자신보다 열 살이 많든 스무 살이 많든 그저 한 가지 ‘나이든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고방식이 슬쩍 노출된 것이다. 나는 그녀가 별 생각없이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일반론보다 이 시나리오가 더 마음에 든다. 좀 더 심층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나마 발끈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의미를 따져보는 내 자세가 신통하기까지 하다.
무슨 일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사태의 이면을 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고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되풀이된다.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스쳐가는 발언에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으니, 이것은 자기인식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자의식을 접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면 보이는 것이 있고, 얻을 것이 있다. 사소한 말실수 하나에서 ‘나를 비우고 가만히 응시하기’라는 사고습관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