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창조는 최고의 생존방식이다
한명석의 "Second Life" 2009/06/21 11:43
가끔 그림판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낙서에 불과하지만 꽤 재미있습니다. 성격 급한 내게 딱입니다. 스케치를 잘하지 못하니 사진을 오려다 쓰면 되고, 색깔도 후딱후딱 바꿔서 칠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저것 응용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꽃이나 컵처럼 단순한 컷 몇 점 그려보고는 이내 동영상도 만들어보고 콜라주도 해 보았는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습작인데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깨우쳐 나가는 과정도 좋았고, 결과물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사진 위에 덧그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도 신통했고, 인형사진을 오려다가 잡아 늘이고 회전시키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림이 무언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ㅎㅎ 유치한 습작 하나 놓고 자뻑이 심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창조’라는 단어가 가까이 다가오는데요, 글 한 편이든 낙서그림이든 나의 생각을 담은 대상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참 좋습니다.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하나하나 실험해보고, 그 과정에 몰입하고 마침내 한 편을 완성해내는 것이 완전한 기쁨입니다. 물론 잘 풀리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즐길만 합니다.
글쓰기를 예로 들자면, 먼저 주제가 떠오르든 소재가 떠오르든 생각이 하나 생겨납니다. 당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감이 잡히질 않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계속 품고 있으면 무어가 되었든 결국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이럴 때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두 세 줄을 써 놓습니다. 그것을 무수히 소리 내어 읽으면서 생각을 굴려 봅니다. 2,3일 밀어 놓았다가 보기도 합니다. 평소에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주제별로 정리해놓았다면 큰 힘이 됩니다. 정리해놓은 것을 슬슬 읽어 내려가다 보면, 따로따로 떨어져 있던 것들이 딱! 하고 연결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럴 때 기분 참 좋습니다. ^^
전에는 글을 쓸 때 필받아서 단숨에 써내려가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바느질이라도 하듯 한 땀 한 땀 생각을 골라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기쁨이 결코 전자에 못하지 않습니다. 물흐르듯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것만이 최고가 아니라, 반복되는 연습을 거쳐 도달하게 되는 작은 성취도 역시 큰 기쁨이더라구요.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무언가를 보며 즐기고 있다면, 한 발 나아가 그것을 직접 만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수용하는 소비자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생산자의 기쁨은 천양지차입니다. 창조의 기쁨은 내게 주도성과 자신감을 주어 계속 성장하게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역량에 대한 인식, 내가 의도한 대로 잘 되어 나갈 때의 황홀감은 우리가 살면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절정경험이 아닐지요? 창조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생존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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